PGA 숀 미킬의 꿈의 무게 Burden of Dreams
PGA 숀 미킬의 꿈의 무게 Burden of Dreams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9.01.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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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PGA챔피언십 우승 이후 오랜 침묵

꿈의 무게 Burden of Dreams

 

숀 미킬이 2003년 PGA 챔피언십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그는 워너메이커 트로피의 무게를 이토록 오래 감당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BY ALAN SHIPNUCK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 가장 버거운 부담이 된다면 어떨까. 평생 꿈꿔왔던 걸 이뤘지만 세상이 그걸 잊어주기만을 바라게 된다면. 숀 미킬은 그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그런 상황이니까. 정확하게 15년 전에 그는 골프 역사상 최고로 손꼽힐 만한 샷을 선보였고, 마지막 홀에서 나온 완벽한 7번 아이언샷으로 2003 PGA 챔피언십의 워너메이커를 거머쥐었다. 서른세 살에 차지한 투어 첫 승이었다. 늦깎이 선수의 미래는 창창해 보였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두 번째 승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자신의 성취와 화해하는 중이다.

“워너메이커 트로피는 초라한 현실 위의 먹구름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미킬은 멤피스 외곽의 리지웨이 컨트리클럽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숀미킬 대로를 통해 진입하는 그곳의 벽에는 그의 이력을 기념하는 자료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미킬이 오크힐의 일흔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기록했을 때 골프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겠다는 포부 같은 건 없었다. “맨 처음에 든 생각은 마침내 PGA 투어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이었다.” 10년에 걸쳐 다양한 마이너 투어를 전전한 끝에 오른 무대였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일럿이 될 계획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도 한 주가 지나 지칠 대로 지친 매니저가 울음을 터트리며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을 때에야 실감했다. 그 뒤로도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우승하고 석 달 뒤에 미킬은 첫 아이를 얻었고, 늘 본받고 싶었던 우상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데이드 파머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4년에 그는 톱25의 성적을 여덟 번 기록했다. 초보 아버지였던 데다 높아진 위상에 따른 낯선 상황에서 거둔 성적표치고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새로 얻은 인기도 의미 있게 사용해서 숀미킬 메이크어위시 클래식을 시작했고, 그 대회를 통해 모은 300만 달러의 기금으로 600건이 넘는 소원을 들어줬다. 미킬은 몇몇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면 지금도 감정이 북받친다.

하지만 2005년이 되자 부담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킬은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다는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그리고 투어와의 법정 소송)를 시작했다. 그의 몸은 왜 말썽이 난 걸까? 그는 “플레이를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극심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말에는 에너지를 되찾았고, PGA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한 달 뒤에는 월드매치플레이에서 당시 5연승을 구가 중이던 타이거 우즈와 맞대결을 펼쳐 4&3으로 압도하면서 챔피언십 매치에 진출했다. 그는 완전히 복귀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어깨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미킬은 이후 두 시즌을 인대가 파열된 채 버텼다. 플레이는 저조했고, 그의 자존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교적이던 사람이 동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오후 3시가 지나서야 혼자 연습 라운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의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2009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샷을 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2011년에는 출전 자격 시한도 끝이났다. 그 후로는 유럽에서 한 시즌을 보내고 PGA와 웹닷컴 투어를 오가면서, 그야말로 그냥 버텨왔다. 미킬은 원래부터 정교한 선수였고, 젊고 파워 넘치는 선수들의 공세를 쫓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다행히도 챔피언스 투어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연습 의욕이 되살아난 후로는 리지웨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점심을 먹을 때면 언제나 아버지가 앉곤 했던 의자에 앉는다. 수십 명이 매일 아침 10시30분에 모여서 라운드를 했는데, 개성만점인 그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면서 어린 숀은 골프에 푹 빠졌었다. 아버지는 2014년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 그린에 나갈 때면 지금도 그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계실 것 같아서 종종 창문을 들여다본다.”

미킬의 골프인생은 달콤 쌉싸름하고, 그건 그를 규정짓는 그 우승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그 주에 플레이를 가장 잘 했기 때문에 나는 PG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트로피에 담긴 역사의 일부가 될 자격을 얻은 걸까? 잘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지금은 내 이름이 거기 올랐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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