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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어니 엘스(2)
정복자 어니 엘스(2)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8.1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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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 엘스는 지금의 골프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이 걸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가 가족과 사랑을 알게 됐고, 자신의 가장 위대한 성취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엘스에게 직접 들어보자.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이제 1년만 지나면 나는 쉰 살이 된다. 믿기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수많은 도장이 찍힌 남아공 여권에 그렇게 적혀 있다. 생년월일: 19691017일이라고. 그날 뭘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어디에 있을지는 안다. 프레지던츠컵이 열리는 호주의 아름다운 코스인 로열 멜버른 골프클럽이다. 인터내셔널 팀의 단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미국 팀 단장은 타이거 우즈다. 우리는 골프를 오래 해왔다. 타이거는 1997년에 오거스타에서 자신의 첫 메이저 우승을 거뒀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나는 두 번째 US오픈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 대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단장을 맡고 나니 TV 중계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보게 됐다. 파리에서 열린 라이더컵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프레지던츠컵을 홀수 해에 열리는 라이더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대회다. 하지만 프레지던츠컵도 라이더컵만큼 흥미진진하고 치열한 대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역할은 국적에 상관없이 12명의 인터내셔널 선수들이 음식과 숙소, 다양한 지원인력이나 부단장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 역사를 인정해야

쉰 살이 넘으면 시니어 골프를 할 게 틀림없다. 예전부터 게리 플레이어가 내게 말하길(이 말에는 누구라도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시니어 메이저도 메이저로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내가 알기로 시니어 투어에도 3대 메이저가 있다. US 시니어오픈과 시니어 브리티시오픈, 그리고 시니어 PGA 챔피언십이다. 게리 플레이어는 이 세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유일한 선수다. 어쩌면 통산 시니어 슬램이야말로 골프계에서 더 축하를 받아야 할 업적일지도 모른다. 그 세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이 나의 또 다른 목표가 될 것이다.

팬들이 보이는 관심의 뿌리는 대회의 수준과 선수들의 성격이다. 코스의 아름다움과 역사도 매우 중요하다. 팬들은 우리가 받는 상금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프레지던츠컵에도 상금은 없지만 그 대회에 열 차례 출전한 것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특히 남아공에서 열린 2003년 프레지던츠컵이 더 그랬다. 단장은 게리 플레이어였고, 미국 팀 단장은 잭 니클로스였다. 정해진 매치가 모두 끝났을 때 양 팀은 동률이었다. 마지막 날 타이거는 싱글매치에서 나를 4&3으로 눌렀다. 단장인 잭과 게리가 만나서 타이거와 내가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첫 홀에서 동타를 기록했다. 두 번째 홀도 마찬가지였고, 세 번째 홀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에 해가 저물고 코스는 어두워졌다. 단장들은 팀원들과 상의한 끝에 동률로 매치를 마무리하자고 합의했다.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골프였다. 마침 그때는 남아공이 국가로서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 시기는 사실상 넬슨 만델라가 석방된 1990년쯤부터 시작됐다. 1995년에 남아공은 럭비 월드컵을 개최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1998년에는 처음으로 축구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물론 다른 일들도 많았지만 이런 대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3년 프레지던츠컵도 그 중 하나였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만델라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니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사만다, 리즐,벤)과.

█ 골프 사랑은 끝이 없다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세상이 작고 익숙하게 보이기 시작할 수 있다. 지구상의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운영하는 코스 디자인 회사는 남아공 외에 베트남과 중국, 두바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코스를 지었다. 이 사업에서는, 또는 그 어떤 사업이라도, 현지에서 고용한 직원들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관계의 질은 사람과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다.

쉰 살을 앞두고 보니 내 인생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게는 형과 누나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는 나처럼 스포츠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내가 더 전망이 있다는 이유로 집 안팎에서 관심을 받았다. 그건 공정한 처사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건 어떤 면에서 인간의 본성이다. 그걸 인지한다면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 삼남매가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지만 그러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했다. 누나는 세르비아 남자와 결혼했고, 조카는 남아공에서 골프를 배우다가 지금은 오번 대학에서 선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여름에 내 조카는 브리티시아마추어에서 우승했고,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오픈과 함께 내년 마스터스와 US오픈의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정말 멋진 일이다!

1990년대 초에 리즐(당시에는 여자친구였고 지금은 내 아내인)과 나는 오랜 캐디이자 친구인 리치 로버츠와 함께 20대 초반의 남아공의 3총사처럼 지냈다. 그리고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면 나라를 가리지 않고 대회에 출전했다. 내가 따지는 조건은 상금이 있는 대회였다. 프로 초반에 나는 남아공과 스위스, 일본, 그리고 두바이에서 우승을 했다. 실력이 좋았고 점점 더 좋아졌으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

1994년에 오크몬트에서 열린 US오픈에 참가했을 때에는 4대 메이저에서 모두 컷을 통과했고, 8위 아래의 성적은 거두지 않은 상태였다. 골프에 실력이 있었고, 그게 내 인생이었다. 그 주에 우승을 거두면서 모든 게 바뀌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플레이했고, 비행기를 탔으며, 저금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좋았다. 사람들, 골프, 대회. 하지만 그때는 인생이 얼마나 더 복잡하고 흥미로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리즐과 내가 결혼한 지도 벌써 20년이 돼간다. 사만다는 스탠포드 대학 2학년이고 럭비 클럽에서 활동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들인 벤은 열열곱 살이고 키는 엄마만큼 크다. 그건 꽤 크다는 뜻이다. 벤은 우리 가족이(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사는 플로리다 남부에 세운 엘스 센터 포 엑셀런스라는 공립학교에 다닌다. 자폐증이 있는 약 300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특별한 학교다. 이건 내가 살면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리즐과 샘과 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학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명의 이름은 댈 수 있지만(리키 파울러, 바버라 니클로스, 조앤 루퍼트, 마빈 섕큰) 그 외에도 수십 명이 더 있다. 하지만 골프에서 내가 거둔 성공도 그 학교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걸 잊을 수는 없다.

아널드 파머는 내가 골프계에서 가장 좋아한 사람 가운데 1명이었고, 2010년에 그의 대회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건 언제까지라도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널드는 이따금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살면서 누린 것은 전부 골프 덕분이다.” 나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또 동의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골프를 사랑했고, 골프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보다 우리에게 더 큰 감명을 주는 게 뭘까?

삶이 내 앞에 뭘 펼쳐 보이든,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BY ERNIE ELS, Photography by BEN VAN HOOK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webmaster@golfk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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