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2-06 10:36 (금)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남자, 스테판 커리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남자, 스테판 커리
  • 황창연
  • 승인 2019.11.0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링? 아니면 홀? 스테판 커리의 뜨거운 열정은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농구에서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소속으로 장거리포를 발사하고, 골프에서도 놀랍도록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행보로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주고 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NBA를 보면 간판선수의 스타일이 팀의 이미지를 결정지을 때가 많다. 쇼를 중시하는 레이커스의 화려함은 매직 존슨의 미소를 판에 박았고, 시카고 불스의 장악력은 마이클 조던의 뜨거운 치열함이 만들어냈다. 이번 챔피언십 결정전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포인트가드인 스테판 커리의 겸손함과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다. 두 차례 리그 MVP로 선정된 커리는 스포츠계에서 가장 선량한 인물로 손꼽힌다. 선수로서나 인간적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커리를 있게 한 힘은 뭘까? 그를 단순한 농구선수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주목받는 롤모델로 끌어올린 인생의 교훈은 뭘까? 올해 서른한 살인 커리는 이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열두 살 때 머틀비치로 떠났던 가족 여행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때는 이미 골프를 한 3년쯤 했을 때다.” 그는 말했다.
“실력이 부쩍 좋아졌고, 아버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린 왼쪽에 연못이 있는 파3 15번홀에 올라섰을 때 두 사람은 동점이었다. 스테판의 티샷은 연못 쪽으로 휘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연못가에서 볼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절묘한 피치샷을 그린에 올린 그는 “파 퍼팅을 성공했고, 아버지가 홀에서 볼을 꺼냈다. 아버지는 그걸 잠시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퍼팅이었다.
이 볼을 저기서 찾은 거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상승세였고, 내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길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그래, 한 번 더 묻겠다. 네 볼을 저기서 찾은 게 틀림없니?’”
그의 아버지인 델 커리는 그게 아들이 사용했던 볼과 다른 브랜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의 분위기에 취해서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던 거다.” 스테판은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홀은 몰수패라고 말했다. 아들이 입을 삐쭉이자 아버지는 아들의 클럽을 빼앗고 다른 가족들이 즐겁게 라운드를 마치는 동안 클럽하우스로 혼자 걸어가게 했다. “그 후로는 볼을 찾을 때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됐다.” 스테판은 말했다.

골든스테이트 팀의 커리가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주 나파의 실버라도 리조트 북코스에서 열린
세이프웨이오픈 프로암 대회에 참가해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때의 교훈은 단순히 분실구에 따른 벌칙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건 플레이에 대한 교훈이 아니었다. 골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정말 강력한 것들, 책임감과 정직함에 대한 교훈이었다.” 델의 말이다. 스테판이 시합에 앞서 드리블을 연습할 때건, 건성으로 넘어가는 대부분의 슈퍼스타들과 달리 팬들이나 안내원, 또는 기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다정하게 눈을 맞추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까지 모든 면에서 늘 신경을 쓰는 데에는 이때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골프는 지금까지도 커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사업과 자선활동의 토대가 됐다. 얼마 전에는 언더아머에서 그의 이름을 붙인 세련되고 모던한 스타일의 골프웨어를 출시했고, 하워드대학의 남녀 골프팀에 수백만 달러의 기금 출연을 약속했다. 골프는 오프시즌에 커리가 콘페리 투어와 유명인사 토너먼트 등에 참여하면서 멘탈 게임을 연마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그의 핸디캡은 +1.5까지 떨어졌다). 또 대중의 시선을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인 아예샤(“샷의 파워가 대단하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두 딸인 라일리(일곱 살)와 라이언(네 살)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고 있으며, 스크린골프를 설치해 놓은 방은 가족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막내인 캐넌은 이제 한 살이지만 벌써 골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델이 쉰 살이 됐을 때 그의 아들은 최고의 선물을 해줬다. 세인트앤드루스로 깜짝 여행을 떠나 하루에 36홀을 플레이하고 온 것이다.
“골프는 스테판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와 자주 플레이를 하는 크리스 스톤은 언더아머의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부문에서 농구를 담당하는 수석 이사다. “그는 늘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 대단히 열심히 노력한다. 학생처럼 게임에 임한다. 플레이를 하지 않을 때면 골프 중계를 보거나 골프 얘기를 하거나 골프 생각을 한다.” 실제로 커리는 NBA
시합 중에도 벤치에 앉아 있다 보면 스윙이나 최근의 라운드, 또는 다가올 골프 여행으로 생각이 흘러갈 때가 있다고 시인했다. 심지어 워리어스 왕국을 구축하는 데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이 골프라고 말했다. “골프는 워리어스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코트 위에서 커리는 3점 슛의 귀재이지만 코스에서도 상당히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워리어스의 다수 지분을 보유한 조 레이콥은 골프 여행에서 스티브 커(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를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구단을 인수한 후 첫 감독직을 그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스타 포인트가드를 만나야 할 때가 됐을 때 커는 페블비치에서 동반 라운드를 제안했다. 시즌 중에는 포섬 세 팀이 플레이를 하러 나가곤 하는데, 클레이 톰슨과 (최근에 팀을 떠난) 안드레 이과달라를 중심으로 다양한 코치와 스태프가 합류했다. 워리어스는 골프코스가 딸린 리조트를 숙소로 잡는 게 보통이고, 커는 18홀 라운드 시간을 끼워 넣느라 전세기의 출발 시간을 재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커리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잉 파트너 가운데 1명은 워리어스 구단에서 농구 운영팀장을 맡고 있는 조니 웨스트이다. 커리는 그가 최근에 LPGA 투어의 스타 선수인 미셸 위와 결혼하면서 “이제 골프 왕족의 일원”이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웨스트는 “워리어스 골프팀이라는 농담”을 자주 한다면서 “단장이 스테판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팀의 우승 문화에 골프가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뭘까? “동료애가 핵심이다.” 커리는 말했다. “농구장을 떠나 시합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뭔가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일상의 느낌을 안겨준다. 그리고 나, 안드레와 클레이, 심지어 커 감독에게도 그렇게 긴장을 풀어놓을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 년에 아홉 달씩, 하루걸러 하루씩 NBA 시합을 뛰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햇볕을 쐬고 골프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느 정도의 승부욕을 유지하고 전략적인 예리함도 발휘한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골프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고 누렸기 때문에 커리는 그걸 다시 나누는 일에도 열심이다. 하워드에 기부를 하기로 한 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역할 때문이고, 그밖에도 첨단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월에 하워드대학에서 그의 프로덕션 회사인 유내니머스는 <에마뉴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는데, 2015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에마뉴엘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일어났던 인종주의자의 총기 난사 사건과 그 이후의 치유 과정을 담은 영화였다(커리는 이 영화의 총제작을 맡았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 그는 대학생들과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모두 열정과 비전이 가득했고, 세상을, 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커리는 말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오티스 퍼거슨이라는 학생은 커리에게 수십 년 전에 폐지된 하워드의 골프 프로그램을 되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그 팀을 1부 리그에 올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슨 대학에 다니던 2008년에 대학농구리그에서 활약했던 커리는 퍼거슨과 그의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당장 그날 밤부터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커리는 남녀 골프팀을 2020~21 시즌부터 6년간 후원하기로 서약했다. 하지만 그의 참여는 그냥 수표에 서명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치진을 구성하는 위원회에 참가하고 팀의 유니폼도 그가 직접 디자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주 세련된 유니폼이 탄생할 것이다. 다들 눈을 떼지 못하는 그런 옷이 될 것이다(커리는 캘러웨이의 인맥을 설득해서 팀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기증하게 했다).” 하워드대학 안팎에서는 커리가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대학에 그렇게 큰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는 분위기다. “커리는 미국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대학의 총장인 웨인 A. I. 프레더릭 박사는 말했다. “정치적인 수사 없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활동을 벌이는 것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난다. 스테판 커리 같은 사람들 덕분에 모두가 사회에 팽배한 냉소에서 벗어나 주변에 행복해 할 요소들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의 골프팀을 되살리는 것은 인종 통합에 대한 커리의 비전에서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으레 외톨이 늑대들이 많은 이 스포츠에 흥겨운 팀의 요소를 더해주려는 PGA 주니어 리그의 홍보대사다. 커리는 PGA 리치와도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데, 형편이 어렵거나 군인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9월에 샌프란시스코의 TPC 하딩 파크에서 열린 제1회 연례 스테판 커리 클래식에서는 PGA 리치를 위한 50만달러의 기금을 마련했다(이 대회에서 후원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은 커리가 요식업계의 거물이 된 아예샤와 공동 설립한 이트-런-플레이 재단이다. 이 재단에서는 여름 캠프와 빈곤지역의 청소년 스포츠에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재정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커리가 골프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참여와 접근’이라는 2개의 주제로 압축된다. “우리는 골프라는 게임을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아이들, 또는 관심은 있지만 장비가 없거나 코스에 나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게임의 저변을 확대하고,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값진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골프를 둘러싼 문화도 조금은 바꿔나갈 수 있으리라고 희망한다.” 

2017년 캘리포니아 주 헤이워드 TPC 스톤브레에서 열린 웹닷컴 투어 엘리메 클래식에 출전해 티샷을 하고 있다.

이곳의 키워드는 문화다. 커리는 현재 캘리포니아 골프클럽의 회원인데, 이곳은 모든 면에서 인근에 있는 올림픽만큼이나 훌륭하다. 커리는 다른 화려한 회원제 골프장에도 자주 간다. 하지만 원래 퍼블릭코스에서 골프에 빠졌다. 샬럿에서 성장한 그는 아버지인 델이 ‘염소 트랙’이라고 불렀던 시립코스인 라크헤이븐 골프클럽에서 레슨을 받았다. 스테판은 고등학교 골프팀에서 선수로 활약했고(NBA 선수 중에 이런 경력을 보유한 사람은 아마 그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순간은 시니어 시즌에 열린 컨퍼런스 챔피언십에서 처음으로 언더파를 기록했을 때라고 한다. 데이비슨 대학 시절에도 캠퍼스에 있는 코빙턴 골프코스를 자주 다녔는데, 그곳은 단 세 홀뿐이지만 커리는 허세를 담아 그곳을 ‘코빙턴 내셔널’이라고 지칭했다. “대단찮은 곳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데이비슨 1학년 때 커리의 룸메이트였고 지금은 그의 투자와 브랜드 파트너십, 그리고 자선활동 등을 총괄하는 SC30의 사장인 브라이언트 바의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예전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바로 이것이 커리가 추구하는 문화다. 친구들과 골프코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불쾌하거나 당혹감을 주는 고리타분한 요소들을 전부 제거함으로써 특히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

네바다주 스테이트라인의 에지우드 타호 골프코스에서 열린 아메리칸 센추리 챔피언십에서 커리가 퍼팅 라인을 살피고 있다.

이런 취지를 설파하면서 커리는 골프의 가장 중요한 홍보대사로 급부상했다(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팔로어는 2,700만명이다). 그가 화려한 신발, 심지어 본인이 디자인한 형형색색의 양말까지 잘 보이도록 말끔하고 높게 재단한 바지 차림으로 늘 신선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 엘리메이 클래식(베이에어리어에서 해마다 열리는 콘페리 투어 대회)에 참가한 것은 얼마나 큰 화제를 일으켰던지, 본인도 놀라워하며 “심지어 잭 니클로스가 내게 트윗을 다 보냈다”고 말했을 정도다. 2017년 산전수전 다 겪은 투어 프로들과 함께 처음으로 출전했을 때는 “NBA 결승전 같았다”면서 “아드레날린이 분출하고 그곳에서 플레이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긴장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74타라는 나쁘지 않은 스코어를 기록하며 24명 정도의 경쟁자들을 제쳤을 때는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듬해 대회에서는 1언더파 71타로 포문을 열었고, 그와 관련된 트윗이 폭발했다. 물론 다음 날은 쓰디쓴 교훈을 얻었다. 3번 홀에서 두 번이나 드라이버샷으로 OB를 내며 86타를 기록했다. “그러고 났더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스윙하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내가 지금 코스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커리의 좋은 샷은 투어 수준이지만 빗나가는 샷을 최소화하고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여파를 줄이는 능력이 꾸준히 60대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선수들과 자신의 차이점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프로 골퍼들은 그렇게 상황을 재조정해서 안 좋은 플레이가 나왔던 홀을 일종의 도약대로 삼아 멋지게 재기를 하거나 탁월한 라운드로 이끌어낸다. 그런데 내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주 나파의 실버라도 리조트 북코스에서 열린 세이프웨이오픈 프로암 대회에 참가해 샷하고 있는 스테판 커리.

하지만 친구인 조던 스피스(두 사람은 언젠가 오바마 대통령까지 포함해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라운드를 함께 한 적도 있다.)와 플레이를 할 때면 커리는 단 두 타만을 핸디로 받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서 농구선수 생활을 마치면 프로 골프에 도전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든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쩌면 농구를 완전히 그만둔 다음에 정말로 노력해서 Q-스쿨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후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도전해볼 수도 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문제를 늘 가볍게 넘겨왔다. PGA의 선수들, 심지어 콘페리 투어의 선수들도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을 플레이에 바쳤다. 그래서 물론 그들과 겨룰 자신은 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 골프는 본업이 아닌 취미로 남아 있을 예정이다. 저번 날에 자신의 클럽을 직접 메고 스탠퍼드 골프코스의 2번홀 페어웨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190cm에 86kg인 그는 젊은 시절의 타이거 우즈처럼 근육질이면서 유연하고, 그에 못지않은 놀라운 헤드스피드를 구사한다.
긴 파4 홀에서 맞바람이 부는 가운데 드라이버를 강타한 그는 7번 아이언으로 어프로치샷을 시도했다. 멋진 하이컷으로 오른쪽 뒤의 깃대를 노렸고 볼은 4.5m 거리에 멈췄다. 그렇게 완벽한 아이언샷을 했을 때와 3점 슛을 성공시켰을 때 어느 쪽이 더 기분이 좋을까? “아이언샷을 제대로 맞혀서 볼을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보냈을 때보다 더 좋은 기분은 없다.” 커리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3점슛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성공률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원하면 언제든 3점슛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아이언샷은 영원한 숙제다.” 그리고 그 숙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이건 골퍼들에게는 즐거운 소식이다. 커리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스포츠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골프계로서는 그만큼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By_Alan Shipnuck

 

황창연 hwangcy@hmgp.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