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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꿈의 넘버 18
영원한 꿈의 넘버 18
  • 황창연
  • 승인 2019.08.01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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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의 메이저 최다승 기록을 향한 타이거의 추격전?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18이라는 그 숫자에는 평생의 욕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 너무 높아서 순진한 타이거라는
소년만이 등정을 꿈꿀 수 있는 산 같은 숫자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에서 자라던 소년 타이거가 하루를 시작하기 전과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것은 골퍼 잭 니클로스의 성취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그 대기록을 정리한 타임라인이었다. 우즈의 운명은 그렇게 침대 머리맡에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타이거는 그 청사진을 추격하고 추월했다. 잭의 US아마추어 승수를 넘어섰고(32), 그보다 어린 나이에 첫 메이저 챔피언이 됐으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숫자, 메이저대회 18승 고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는 숫자, 그 어떤 일대기보다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숫자였다. 18이라는 그 숫자에는 평생의 욕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 너무 높아서 순진한 소년만이 등정을 꿈꿀 수 있는 산 같은 숫자였다.

한 해, 두 해, 우즈는 니클로스의 족적을 쫓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연소 선수가 됐다. 동시에 4대 메이저대회의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첫 번째 선수, 이른바 타이거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모든 대회에서 72홀 스코어의 타이기록을 달성하거나 갱신했다. 2008US오픈에서 다리에 금이 간 채로 우승을 쟁취했을 때 그는 서른두 살의 나이로 메이저대회 14승을 기록했다. 2006US오픈 챔피언인 제프 오길비는 이렇게 장담했을 정도다. “그 순간에는 그가 잭의 기록을 깬다는 데 내 전 재산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18이라는 숫자에는 골프 이상의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행복한 가정과 자기관리, 그리고 좋은 유전자도 중요했다. 니클로스의 길고 꾸준한 선수생활은 황금률이 됐고, 그는 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이른바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을 꼽았다. 다섯 자녀의 다정한 아버지인 황금곰은 아이들의 학예회나 운동시합에 어떻게든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무튼 자녀들의 기억 속에는 그런 아버지로 남아 있다. 그의 아내 역시 PGA 투어에서 젊은 선수들의 가족들을 살피며 그에 못지않은 존경을 얻었다.

니클로스라는 산을 오르던 우즈의 발목을 잡은 건 코스 밖에서의 난잡한 생활이었다. 자동차로 소화전을 들이받으며 인터넷 시대에 가장 외설적인 스캔들을 쏘아올린 2009년 추수감사절 날, 그의 선수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스트레스와 수치심이 신체에 독성으로 작용해서 물리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을 믿는다면 우즈의 허리 부상은 다른 시각에서 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는 과도한 트레이닝으로 몸을 극한으로 혹사했다는 비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게 허영심이었는지, 아버지(그린베레 출신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타이거 본인에게조차 미스터리인 어떤 다른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니클로스는 보수적인 중서부 출신이지만 우즈가 개인적인 시련을 겪는 동안 언제나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타이거가 18, 또는 그 이상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20175월까지만 해도 그건 꿈같은 생각이었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면서 그는 다시 구설수에 올랐고, 네 번의 허리 수술에 따른 고통과 통제력의 상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즈가 이듬해 초에 복귀했을 때, 마흔두 살의 몸은 재활을 통해 회복됐고 정신적으로도 걱정거리가 없었다. 아마 그런 상태는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18승의 추격전은 이제 끝났다. 중압감을 마침내 내려놨다. 타이거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어쩌면 아이들을 위해 플레이했다. 2018년의 전반기는 융합수술을 받은 척추로 어깨 너머에서 지켜보는 코치도 없이 스윙을 다시 익히며 코스에서 홀로 게임의 비밀을 캐던 예전의 단순했던 시절로 돌아간 시기였다. 우즈는 브리티시오픈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다투며 골프계를 놀라게 했고,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완전한 복귀를 알렸다. 갑자기 18이라는 숫자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호랑이와 황금곰은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11승을 합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2005년(타이거)과 1986년(잭)이 가장 짜릿한 승리로 기억된다.

잭과 타이거는 늘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였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해마다 열리는 마스터스의 챔피언스 만찬이었다. 올해 니클로스는 뭔가 달라진 걸 감지했다. “그가 그렇게 차분하고 플레이할 준비가 그렇게 잘 돼있고 플레이를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는 만찬이 있었던 그 다음 날 내게 말했다. “타이거가 내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기록이 깨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하지만 그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제일 먼저 그에게 악수를 건네며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에도 잭의 예측은 맞았다. 며칠 뒤에 우즈는 본인의 전설적인 선수인생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열네 번째 우승 이후 11년 만에 열다섯 번째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품에 안은 것이다. 우즈는 1997년에 그랬던 것처럼 오거스타 내셔널을 장악하지도, 전성기 때처럼 보는 퍼트마다 족족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확성과 꾀와 배짱으로 우승했고, 그건 거의 모든 코스에서 성공을 안겨줄 레시피였다. 이제 셈이 바뀌었다. 타이거가 몇 달 뒤에 열린 US오픈에서 말했듯이, “지난 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몸이 계속 나아진다면 나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가령 앞으로 10년이 남아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메이저대회는 마흔 번인데, 상당히 많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 네 번은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전해졌다.

하지만 18승을 향한 추격전으로 더 통렬하게, 어쩌면 더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가치의 전환이다. 예전에 타이거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버지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잭의 기록을 갱신해야 했다. 이제 싱글 대디가 된 그에게는 보다 개인적인 이유가 생겼다. 페블비치에서 나는 우즈에게 니클로스를 따라잡는 일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물어봤다. “내게 중요한 건 내가 다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는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경쟁이 그리웠고 플레이가 그리웠다. 이제는 그걸 다시 할 기회를 얻었고, 그걸 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내가 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로지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골프는 내게 너무나 큰 기쁨을 안겨주고 아이들이 그걸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안겨준다면 나도 함께 웃을 수 있다.”

타이거가 잭의 PGA 투어 통산 72승 기록에 도달했던 2012년 메모리얼에서 함께 한 두 사람.

by Alan Shipnuck

 

황창연 hwangcy@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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