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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하와이 오하우 섬 카후쿠 골프코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하와이 오하우 섬 카후쿠 골프코스
  • 황창연
  • 승인 2019.05.14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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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후 섬의 아름다운 북부 해안에 펼쳐진 카후쿠 골프코스는 그야말로 골프의 낙원이다. 하지만 어쩌면 실낙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건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 그리고 돈이 줄줄 새고 허름하지만 그러면서도 더없이 찬란한 이 야성의 코스를 ‘미국에 남아있는 최고의 골프 부지’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By Josh Sens, Photography by Marco Garcia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터프한 프로 골퍼에서 입담 좋은 TV 해설자로 변신하기 한참 전이었던 1980년의 어느 여름 날 오후, 마크 롤핑은 패배의 씁쓸한 기억도 털어버릴 겸 오아후 북부 해안을 따라 차를 몰았다. 터틀베이에서 열린 하와이 PGA 지역 챔피언십의 마지막 홀에서 두 타 차 선두를 날려버리면서 PGA 챔피언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회도 물거품이 돼버린 후였다.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그에게 한 친구가 관광 삼아서 해안도로를 따라 카후쿠라는 작은 마을에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가는 길이라며 알려준 거라곤 신호등에서 좌회전을 하라는 것이었다. “카후쿠에는 신호등이 딱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아주 간단했다.” 롤핑은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았더니 완만한 오르막이 나오면서 모래언덕들 사이로 페어웨이가 손가락처럼 뻗어나간 풍경이 펼쳐졌다.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에 펼쳐진 링크스 같은 레이아웃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스코틀랜드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9홀인 카후쿠 골프코스는 최소한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스코틀랜드와 달랐다. 플레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풀이 무성한 그린과 티잉그라운드는 대체로 텅 비어 있었다. 깃발은 무역풍에 나부꼈다. 그렇게 덥수룩한 채로 반쯤 잠들어 있는 듯한 상태인데도 코스는 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롤핑이 그때까지 본 코스들 중에 최고로 꼽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건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클럽하우스와 코스는 40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1976년부터 살고 있던 마우이의 집으로 돌아온 롤핑은 다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카후쿠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NBC의 현장 리포터로 일하는 틈틈이 그는 건너편 섬의 그 코스를 자주 찾았다. 무너질 것 같은 프로숍과 잘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까지, 코스의 모습은 그가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람은 오히려 더 줄었다. 그렇잖아도 적은 플레이 수는 시간당 포섬 한 팀 이하로 감소했다. 한 주에 평균 약 260라운드 수준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 시설과 롤핑의 관계였다. 카후쿠는 그가 애착을 가지고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더 가다듬고 싶은 곳이 됐다. 그는 일련의 리노베이션 계획을 짜면서 그렇게 하면 하와이 주민들은 카후쿠를 저렴하게 이용하면서도 외부인들은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찾고 싶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롤핑은 골프코스 개발에 경험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카팔루아의 플랜테이션 코스를 만들 때에도 힘을 보탰다. 그리고 지금도 어려움에 시달리는 시카고의 시립 코스 두 곳(잭슨 파크와 사우스 쇼어 코스)을 하나로 합쳐서 지역 주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타이거 우즈의 코스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카후쿠 부지는 오아후 시의 소유이고, 많은 주민들이 이곳의 개발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시골은 시골답게.” 이 지역 사람들은 이런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기도 하고 임시 간판까지 세워 놨다. 사람들이 개발을 경계하는 이유는 이미 개발의 사탕발림에 당했던 경험 때문이다. 롤핑은 하와이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 된 터라 어느 정도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같은 일을 시도했다면 당연히 의심받았을 테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회의론에 가까웠다.

그가 이 일대에서 뭔가를 추진하는 건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카후쿠 출신으로 코스의 경기진행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번 호아킨은 말했다. 자금을 마련하고 허가를 받는 것 외에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호아킨은 말했다. “전에도 거액을 투자해서 이곳에 집을 짓고 온갖 것들을 시도하겠다는 개발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롤핑은 집을 짓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모든 문제와 가능성을 종합해봤을 때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은 드물 뿐더러 시립 골프코스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그는 말했다.

내 생각에 이곳은 북미에 남아 있는 최고의 골프 부지지만 지금 상태로 봤을 때 이곳이 언제까지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롤핑은 말했다.

그의 해법은 업그레이드를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세인트앤드루스를 지을 수 있을까롤핑은 말했다. “없다. 여기에는 그런 역사가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스반스는 지을 수 있다.”

이곳을 홈코스라고 부르는 많은 현지인들에게 풀이 무성하고 페어웨이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은 카후쿠는 지금 이대로 만족스럽다.

이곳을 짓던 1937년에 당시에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와이 지역의 사탕수수 거물인 캠벨 가문은 현지 설탕공장의 몇몇 직원들을 위한 일종의 편의시설로 카후쿠를 조성했다. 캠벨 가문은 시유지를 임대했고, 계약은 약 70년간 유지됐다.

그 기간 동안 카후쿠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군의 비상 활주로를 위해 일부 페어웨이를 평평하게 다져야 했다. 1980년에는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개비 파히누이가 2번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카후쿠는 미드-퍼시픽오픈에서 여덟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랜스 스즈키와 주니어 시절에 이곳을 자주 찾았던 PGA 투어 프로 딘 윌슨을 포함한 실력 있는 선수들도 배출했다. 윌슨에게 카후쿠는 울퉁불퉁한 그린과 희한한 형태의 벙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환상적인 곳이었다.

관리 상태는 늘 좋지 않았다.” 윌슨은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탁월한 코스였다. 우리는 1달러를 내고 플레이를 했고, 라운드가 끝난 후에 또 다시 플레이를 하더라도 돈을 더 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6년에 캠벨 가문은 주변의 114에이커와 함께 이 코스를 컨티넨털 퍼시픽에 매각했다. 그런데 플로리다의 이 개발업체는 카후쿠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해변을 따라 호화로운 저택을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격렬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무산됐다. 2017년에 컨티넨털 퍼시픽은 손실을 감수하고 카후쿠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코스와 주변 부지는 시에서 1,210만달러에 인수했다. 시의 소유가 된 코스는 시립시설답게 공공의 휴식 공간이 됐지만 해마다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물론 수익을 창출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측면에서 효과를 내고 있다.” 섬의 6개 시립시설을 관리하고 있는 사업서비스국의 개릭 이와무로는 말했다. “이곳은 현지 주민들, 노인들과 수입이 일정한 사람들, 이를테면 저렴한 비용으로 플레이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런 사람들이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나와서 여가를 즐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게 오히려 이익인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지역 보건제도에 의존하는 비율이 낮아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캐디쉑>이라는 영화에 따르면 골프는 속물과 헛물들의 게임이다. 하지만 더 실질적인 경계는 부자와 그렇지 않은 빈자다. 돈이 많거나 집안이 좋아서 어느 코스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사람들과 지갑과 인맥이 빈약해서 선택에 한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오아후의 북부해안에서는 그 차이가 극명하다.

적자가 쌓여가는 코스지만 카후쿠의 풍경만큼은 백만불 짜리다. 파3 4번홀 티잉그라운드의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터틀베이 리조트와 흠 잡을 데 없이 관리되는 두 군데의 18홀 레이아웃에서 킹카메하메하 고속도로를 따라 해변을 끼고 6km 남짓 달려서 카후쿠에 진입하면, 마크 롤핑이 거의 40년 전에 좌회전 신호를 받았던 한산한 사거리가 나온다. 신호등도 여전하지만 골프코스를 가리키던 표지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예전의 표지판은 이제 카후쿠 프로숍 한쪽 귀퉁이에 놓여 있다. 이 프로숍도 강력한 돌풍이라도 불면 금방 쓰러질 것처럼 낡고 허물어진 상태다. “이 건물이 여태까지 쓰러지지 않은 건 흰개미들이 서로 손을 잡고 버텨주기 때문이다.” 다정한 인상의 호아킨은 일주일에 닷새는 이곳에서 카운터를 본다.

이곳은 프로숍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하다. 골프 의류나 장비를 전혀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했던 골프볼과 티는 무료로 나눠준다. 간식거리나 음료수는 자판기에서 사야 한다. 카후쿠의 모자나 셔츠를 사고 싶다면 기념품을 판매하는 현지의 고등학교에 가보는 편이 낫다.

호아킨은 카후쿠에서 일하는 5명의 직원 가운데 1명인데, 3명은 프로숍에서 일하고, 2명은 보수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터틀베이에서 일했다. 그곳은 근무시간이 길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카후쿠에서 일하는 건 훨씬 수월하다. 간혹 밖으로 나가 서퍼들에게 코스 경계선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치는 일도 있다. 그리고 더 드물기는 하지만 복장 규정을 지키게 하는 것도 그의 업무다. 유일한 규정은 신발을 신고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티타임 예약이 가능하지만 예약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들 그냥 온다고 호아킨은 말했다. 어쩌다가 관광객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지 주민들이고, 다양한 인종들이 거주하는 주민의 인구구성이 코스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주로 해 뜰 무렵에 자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올해 일흔아홉 살인 커티스 매스탤카가 있다. 그는 20대에 서핑하러 오아후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골프를 늦게 배운 커티스는 수십 년 동안 호놀룰루 공항에서 비행기 급유 일을 했기 때문에 이제 보청기 신세를 지게 됐다. 무릎과 팔꿈치에 보호대도 착용했다. 하지만 골프카트는 탈 수 없다. 카후쿠에는 카트가 한 대도 없다.

몇 년 전에 컨티넨털 퍼시픽이 이 코스를 소유했을 때 카트를 대거 도입했지만 그 시도는 역효과를 낳았다. 지역 주민들이 카트를 몰고 그대로 집에 가거나 장을 보러 갔기 때문이다. 커티스는 걸어서 플레이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장을 보면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 나이니까.” 그는 말했다.

서핑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예전에 했던 많은 것들은 이제는 할 수 없다. 그래도 골프 덕분에 이렇게 계속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아침 포섬은 포섬이 아닐 때도 있다. 가끔은 5명이나 6명이 함께 한다. 늘 빠지지 않는 멤버는 통가 출신의 테니스 스타였으며 근처에서 폴리네시아 문화센터를 운영했던 파카시에이키 토보, 브리검영 대학 오아후 캠퍼스의 영문과 교수인 네드 윌리엄스, 그리고 필리핀 출신으로 527일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됐다는 메이티벤 라카 등이다. 라카는 말했다.

절대로 다른 사람과 혼동이 되는 일이 없도록 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인데, 과연 효과가 있었다.”

보통 라카와 친구들이 짐을 챙기고 있으면 루디 벤디올라가 막 도착해서 자신의 동료들과 코스에 나갈 준비를 한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벤디올라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고 코스에 와서 푼돈을 받고 캐디를 하거나, 거기에 돈을 조금 더 보탠 푼돈을 내고 플레이를 했다. 그게 1960년대였다. 이제 예순네 살이 된 그는 현지인 가격인 9달러를 내지만 다음 생일이 지나면 노인 할인을 받아서 7달러만 내면 된다.

우리가 시골을 시골답게 하는 구호를 외치는 이유는 지금까지 온갖 장밋빛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걸 짓겠다, 현지에 이런 기여를 하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프에 많은 돈이 들면 안 된다.” 그는 말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바로 이렇게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한다.”

마크 롤핑은 이런 우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주민들의 걱정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카후쿠를 위해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규모면에서 다양하지만 전부 개선을 통해 코스를 보존하는 방향이다. 그 중에는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거나 대여해서 18홀로 확장하는 것, 그리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홀을 재배치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어쨌든 카후쿠에는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게 롤핑의 주장이다. 페어웨이와 벙커를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린의 잡초를 뽑고 잔디를 새로 심기만 해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모래 토양인데다 바닷가에 위치한 카후쿠에 투자가 이뤄지면 꿈의 휴양지로 변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롤핑의 청사진이다. 그걸 실행하려면 현지 주민들의 반대, 예산의 한계, 복지부동의 관료주의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고 롤핑은 말했다. 현재의 상태로는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 많은 곳들처럼 오아후의 시립 코스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섬에 있는 여섯 곳의 시립시설 중에 사람들로 붐비는 와이키키에 있는 알라와이만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마저도 예전만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작년 4월에는 오아후 동쪽에 위치한 또 다른 시립시설인 올로마나가 예고도 없이 문을 닫았다. 사용료와 지불이 밀린 코스는 골프카트까지 압류됐다. 얼마 후에 다시 문을 열기는 했지만 불길한 신호였다.

이번 봄에 오아후에 전해진 또 하나의 빅뉴스는 알라와이의 드라이버 연습장에 톱골프가 들어온다는 소식이다. 톱골프는 호놀롤루 카운티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립 골프 개선 자금을 지불하기로 했는데, 영업을 시작하고 처음 2년 동안은 1년에 약 1백만달러를 내고 그 후에는 계속해서 연간 50만달러를 내는 조건이라고 오아후에서 골프를 담당하는 이와무로는 밝혔다.

톱골프 계약 체결의 중재 역할을 맡았던 롤핑은 합리적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이건 시작일 뿐이며, 활력을 잃은 오아후의 시립시설에 활기를 불어넣을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카후쿠를 업그레이드하고 외부인의 그린피를 높이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이를테면 부자들의 플레이 비용으로 빈자들의 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북부 해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접근법을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점은 롤핑도 잘 알고 있다. 시골을 시골답게 유지하자는 의견에도 인정할 만한 점이 있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해서 가장 시골다운 면모를 잃게 될 위험을 감수하는 건 옳지 않다.

이렇게 아름다운 코스에서 저렴하고 편리하게 플레이를 하는 것, 그게 골프의 생명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걸 지켜나가야 한다.” 롤핑은 말했다. “상황이 악화되도록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전부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황창연 hwangcy@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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