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6-17 13:21 (월)
조니 밀러가 꽤 괜찮은 해설가인 이유
조니 밀러가 꽤 괜찮은 해설가인 이유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9.04.09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니 밀러의 해설은 탁월했다. 마스터스에서는 다만 그에 약간 못 미쳤을 뿐이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오거스타에서 우승하고 그린재킷을 입는 건 당연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턱에서 주저앉았을 때의 통렬함에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아닌 말로, 짝사랑보다 더 신랄한 게 어디 있겠는가? 20세기 미국 골프계의 4대 천왕은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다(이었다). 톰 와이즈코프, 그렉 노먼, 켄 벤추리(부디 영면하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2위만 세 번을 차지한 조니 밀러. 밀러는 마스터스를 비판하곤 했다. 아예 이 대회를 오거스타 내셔널 연례 춘계 퍼팅 챔피언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에 속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71년과 1983년 마스터스, 그리고 특히 1975년 대회를 찾아보라. 밀러가 필 미켈슨의 US오픈 2위 기록을 줄줄 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뛰어난 골프 해설자가 되려면 통찰력도 중요하지만 공감능력도 필요하다. 밀러는 낚아채지 못했던 메이저에 시선을 반쯤 고정한 채로 선수 생활을 끝마쳤다. 그리고 2월에 NBC의 중계석 마이크를 내려놓을 때에도 자신이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했다. “그들이 내게 녹색 조끼라도 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밀러는 1994년에 마지막으로 마스터스에 참가한 후 해마다 클럽에서 모든 메이저대회의 역대 우승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음에도 20년 가까이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5년 전부터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클럽하우스나 그 나무 밑에서, 또는 테라스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그를 보게 될 것이다. 저기 조니 밀러가 잭 니클로스와 얘기를 나누고 있어. 만약 가까이에 있다면 캘리포니아의 햇볕에 바짝 그을린 듯한 조니의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골프다. 오래 전에 조니 밀러 브랜드의 옷을 구입하기 위해 우리를 시어스로 유인했던 남자. 그는 죽을 때에도 멋있게 죽을 것 같다.

조니의 첫 번째 마스터스는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했던 1967년도 대회였다. 그는 더들리 포지라는 장례업자 소유의 아파트에서 지냈는데, 밀러는 지금도 방부제 냄새가 기억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들리의 손자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워커 포지와도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더들리 포지의 인연은 그의 인간관계가 대부분 그랬듯이 모르몬교 때문이었다.

2년 전에 조니는 아마추어 참가자들을 위해 해마다 개최하는 만찬에서 연설을 했다. 1967년에 밀러는 컷은 통과했지만 최저타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그건 벤 크렌쇼의 몫이었다. 벤도 TV 해설자로 잠깐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너무 신사다웠다. 조니는 솔직함이 부족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가끔은 과해서 문제였다. “최근 6~7년 사이에 해설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톰 와이즈코프는 얼마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와이즈코프도 오거스타에서 2위를 네 번 기록했다. “부드러워졌다. 나이가 들면서.” 오리지널 TW는 올해 일흔여섯이다(T. 왓슨과 T. 우즈는 그 후에 등장했다.) 그리고 조니의 나이는 일흔한 살이다. 조니라는 애칭 때문에 아직 젊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1975년 마스터스에서 그린 재킷은 잭의 차지가 됐지만 그래도 조니는 마이크를 잡았다.

와이즈코프는 CBS 해설자로 마스터스 토너먼트 중계에 열두 번 투입됐다. 마스터스에서 두 차례 2위를 기록한 벤추리도 CBS 소속으로 35년간 오거스타를 찾았다. 벤추리의 코멘트는 예측 가능하지만 열정적이었다. 그 덕분에 마스터스의 마지막 라운드는 신성한 일요일이 됐다. 그는 참패를 당한 이들을 위해 장례식의 만가를 연주했다.

조니는 18번홀 그린 뒤쪽의 중계석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나는 생방송으로 마스터스를 중계하다가 말실수를 후회한 적은 없냐고 물어봤다. 어쨌거나 그 클럽은 예의를 중시하는 걸로 유명하니까.

수위를 부드럽게 조절할 수도 있었다.” 밀러는 말했다. “마스터스는 굳이 곱게 꾸며줄 필요가 없다. 그런 건 콰드시티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NBC의 파트너인 단 힉스와 오거스타 중계를 함께 했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지냈고, 예약을 포함한 모든 준비는 조니가 맡았다(비서의 도움을 받아). 이따금 밀러는 일요일 오후에 한 편의 오페라가 펼쳐졌던 1975년을 떠올릴 것이다. 중요한 조역을 맡았던 와이즈코프와 밀러는 우승자에게 한 타 뒤진 성적으로 라운드를 마쳤다. 우승자는 물론 니클로스였다.

잭은 언제나 나를 이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밀러는 오거스타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에 힉스에게 말했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진실한 얘기였지만 바로 그런 게 조니의 진면목이고 마스터스 주간의 실체다. 마스터스는 사람들을 친밀하게 만든다. 난롯가에서 둘 만의 식사를 할 때처럼.

하지만 너무 감상적이 되지는 말자. 조니는 다른 메이저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한 마스터스 챔피언들의 명단을 읊으면서, 그 중에 퍼팅을 잘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지적할지도 모른다.

조지 아처라든가, 래리 마이즈라든가. 그러니까 연례 춘계 퍼팅 콘테스트라면서.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조니 밀러에게 마스터스는 사라진 꿈과 같다. 그래도 그는 올해 그곳을 다시 찾는다. 그는 그 꿈을 포기할 수 없다.

 

* 조니 밀러의 말

그립을 충분히 가볍게 쥐는 골퍼는 1,000명에 1명뿐이다.”

나는 어찌나 플레이를 형편없이 했던지 국세청에서 안부를 묻는 카드를 보냈을 정도다.”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일단 수중에 들어오고 나면.”

니클로스가 플레이를 잘하면 그가 우승한다. 그가 플레이를 잘못하면 2위를 한다. 그가 플레이를 형편없이 하면 3위를 한다.”

매일 같이 오늘은 근사한 날이 될 거라고 나를 세뇌한다. 그러고는 첫 번째 샷부터 망쳐버린다.”

 

마이클의 더 많은 기사를 아래 페이지에서 참고하세요!
GOLF.COM/BAMBERGER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webmaster@golfko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