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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이겨낸 의지의 세상, 푸에르토리코 골프 여행
폭풍우를 이겨낸 의지의 세상, 푸에르토리코 골프 여행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9.04.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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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마리아의 엄청난 폭풍도 골프와 이구아나, 그리고 미국의 쉰한 번째 주에 놀러온 골프화 없는 미국인을 날려 보내진 못한다.
TPC 도라도 비치의 이스트코스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곳은 태풍에 코스가 파괴됐다가 빠르게 복구됐다.
TPC 도라도 비치의 이스트코스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곳은 태풍에 코스가 파괴됐다가 빠르게 복구됐다.

[서울경제 프매거진] 골프화를 도둑맞았다. 아마도 누군가 공항에 있을 때 내 골프백에서 빼갔거나 이곳으로 오는 도중 빼갔을 것이다. 아니면 인디애나에 있는 내 트럭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푸에르토리코에서 골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일반 구두를 골프화처럼 신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첫 날이다. 내가 있는 곳은 푼타 보린켄 골프클럽으로, 예전의 미군 공군기지에 건설된 거칠고 러프가 우거진 퍼블릭 코스다(한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골프를 즐긴 곳이기도 하다). 6,000야드의 이 테스트 무대는 대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람이 거센 이 섬의 서부해안에 외롭게 떨어져 있다. 푼타 보린켄은 대서양과 카리브해가 만나는 곳의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모든 홀에서 두 대양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코스는 마치 아일랜드 해안에 있는 잊혀진 보석같이 오래된 코스처럼 여겨진다. 지나치게 어려운 구석은 전혀 없으며, 아울러 유감스러운 점도 없다. 이 코스는 사람들이 플레이하고 싶어할만한 곳이다. 나는 어제 밤에 차를 몰아 이곳에 도착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골프화를 구입하기에 너무 이른 시각이다. 그래서 구두를 신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클럽하우스에서 일반인 3명과 한 팀에 배정이 됐다. 3명 모두 이 지역의 유지들이었다. 2명은 소매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뉴저지 출신의 소방관이었다. 이들 3명 모두 친절했으며, 미국인 1명을 팀에 받아들이는 일을 아주 행복하게 여겼다. 그들은 코스에서 즐길 시가를 잘라 뒀으며, 서로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내게 물을 사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바람이 건조해 갈증이 날 것이다. 소방관이 내 신발을 살펴봤을 때 약간 민망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골프화를 마련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마냥 좋네요.” 그는 내 말에 흔들리는 듯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가. 사정이 그렇다면 이걸 사용해도 좋아요!” 그가 자신이 신고 있는 골프화를 가리켰다. 우린 초면이었지만 그는 마치 내 사촌이라도 된 듯 행동을 했으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족 같은 사람의 도움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는 거절하는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골프화가 아주 많아요. 당신에게 한 켤레 그냥 줘도 돼요.” 그러더니 그가 사라졌다. 어쨌거나 그는 내게 맞는 신발 한 켤레를 남겨줬다. 그리고 그가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시 나타났다. 신고 온 신발은 닳은 정도도 똑같았다. 푸에르토리코의 골프코스에서 가장 먼저 벌어진 일은 누군가가 자신의 골프화를 벗어서 내게 준 것이었다. 이곳에는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방문객을 가족처럼 대해준다.

푸에르토리코의 하늘은 깊은 색조의 푸른빛이며, 구름이 줄을 지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비행기 탑승구를 나오자마자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으며, 따뜻한 기온 때문에 함께 온 여행객들이 스웨터를 벗는다. 거리에는 말린 무엇인가를 파는 손수레가 늘어서 있다. 주유소 앞에는 과일이 든 바구니가 놓여있다. 식당에서는 언제나 동전만한 크기의 말린 플랜테인을 내놓는다. 플랜테인은 바나나의 일종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약간 불편할 정도로 온화하다. 모든 것이 어떻게 이런 것일까? 푸에르토리코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는 멀리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그렇긴 하지만 또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하는 순간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이곳의 여러 일들이 놀랍기만 하다. 우선 입국이 아주 쉽다. 관세도 전혀 없다. 여기에 오면 그냥 돈을 쓰기만 하면 된다. 휴대전화도 잘 된다. 풍경이 어디나 아름답다. 렌트카 빌리기도 쉽다. 운전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도로 가운데를 놔두고 옆으로 차를 몰고 다닌다. 밤에는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볼 수 있는 스포츠 바에 남자와
여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커다란 평면 모니터 앞에 반원형으로 둘러앉아 미국의 NBA 농구 게임을 보거나 메이저리그 야구 게임을 보며 논쟁을 벌인다.

푸에르토리코 로열이사벨라 골프장 전경
푸에르토리코 로열 이사벨라 골프장 전경

푸에르토리코를 처음 찾는 사람에게는 서쪽 끝이 좋은 출발점이다. 토속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푼타 보린켄이나 고지대가 특징인 로열 이사벨라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열 이사벨라는 끝에서 끝까지의 전체 거리가 7,538야드이며, 호화로운 골프숍과 하늘로 치솟은 현대적 호텔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의 플레이 경험은 최소한 목이 부러질 듯한 11번홀의 블라인드샷과 페어웨이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수도 산후안으로 향했다. 산후안에 있는 TPC 도라도 비치의 이스트코스에서 나는 기억에 남을 라운드를 가졌다. 이 코스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의 작품이며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가 다시 설계했다.

나는 클럽의 매니저인 제프 윌렌버그와 함께 플레이했으며, 그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코스에 미친 피해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우리는 수개월 동안 마을을 원래 상태로 복구했어요. 골프코스를 신속하게 복구해 제대로 운영했고, 이어 몇 주 동안 수백명에 달하는 직원들과 가족들에게 매일 음식을 제공했죠. 우리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위성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고, 한 번에 단 몇 분이긴 했지만 하루 24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회선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이곳을 찾곤 했습니다.”

멀 리 동남쪽으로 이동해 여행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나는 휴마카오의 팔마스 델 마르에 있는 팔마스 애슬레틱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 번 나는 일반인 3명의 골프팀에 배정됐다. 호세란 이름의 홍보책임자와 같은 카트를 탔으며, 그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대부분을 드로샷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다른 카트에는 그가 매주 얼굴을 보는 친구인 카를로스가 탔다.

후마카오의 팜코스에는 허리케인 마리아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페어웨이 곳곳에 남아 있다.
후마카오의 팜코스에는 허리케인 마리아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페어웨이 곳곳에 남아 있다.

팔마스는 2개의 18홀 코스를 갖추고 있다. 먼저 팜코스는 게리 플레이어가 초기에 설계한 코스로 1970년대에 개장했다. 이 지역 특유의 나무 이름을 딴 플렘보이엔코스는 리스 존스가 설계한 7,118야드의 걸작이다. 우리는 팜코스에서
플레이했으며, 이곳은 많은 곳에 허리케인 마리아의 여파가 남아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뿌리가 뽑힌 나무 그루터기와 가까운 거주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날아가 버린 지붕 기와 등이 보였다. 허리케인 마리아는 이곳으로 가장 먼저 상륙했다.
호세가 말했다. “폭풍이 12시간 지속됐어요. 이곳에서 살면서 많은 허리케인을 겪었는데 대체로 3~4시간 불다가는 끝나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더라고요. 허리케인 마리아는 영원히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그가
2년 전 어느 토요일의 한낮에 이 코스에 들어섰을 때 코스는 활짝 문을 열고 골퍼들을 맞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무료 플레이는 없었고, 플레이가 지연되지도 않았다. 푸에르토리코 자체와 마찬가지로 이곳 코스들도 다시 골퍼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나는 호숫가에서 1.5m 길이의 이구아나를 봤다. 같은 조 골퍼들 중 내게 사진을 찍으라고 권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이 지역에는 어딜 가나 크고 작은 이구아나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오리도 있었다. 호세가 내게 말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이구아나를 싫어해요. 이구아나가 코스를 망가뜨리기도 해요. 하지만 이구아나는 우리보다 앞서 오래전 부터 이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고 있죠.”

카를로스는 “이구아나는 들개의 좋은 먹잇감이고 골프화 스파이크로 뻥 차버리기에도 좋아요”라며 웃었다. 나는 내 골프화를 내려다봤다. 이제 골프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골프화가 편안했다. “나는 절대 이구아나를 스파이크로 걷어차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다. 나는 이 골프화와 그 곁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과 함께 했다! 그것들은 모두 이 섬의 선물이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webmaster@golfk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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