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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과 죽음 넘어 PGA 투어까지... 엘 카마론의 경이로운 골프 인생
국경과 죽음 넘어 PGA 투어까지... 엘 카마론의 경이로운 골프 인생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9.03.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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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가장 드라마틱한 루키, 멕시코 출신의 호세 데 헤수스 로드리게스가 PGA 투어에 합류하기까지 걸어온 길을 묘사하는 데 ‘근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라틴아메리카 투어와 멕시코 투어, 웹닷컴 투어를 거쳐 올해부터 PGA 무대에서 활약하게 될 멕시코 출신의 호세 데 헤수스 로드리게스. (사진_골프닷컴)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강 저편에서 구원이 손짓했다. 폭은 겨우 200야드에 불과했지만 그때 리오그란데 강의 거센 물살은 호세 데 헤수스 로드리게스가 짧고 곤궁한 삶에서 마주한 가장 격렬한 도전이었다. 깊은 밤, 그가 자유를 향한 모험에 나섰을 때 강물은 먹물처럼 검었다. 발밑에는 미끄러운 돌과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멕시코 내륙의 이라푸아토에서 자란 호세 데 헤수스는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턱에 차오르는 차가운 강물이 깊은 두려움을 일깨웠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죽는 거야.’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고민을 거듭했던 석 달 동안 호세 데 헤수스는 매일 리오그란데 강을 건널 기회를 엿봤지만 물살과 미국 국경 수비대 때문에 시도를 미루곤 했다. 다 포기하고 집으로 가고 싶을 때가 많았음에도 도전을 멈추지 못한 건 집에 두고 온 식구들 때문이었다.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흙집에서 어깨를 부비며 자고 있는 7명의 형제들, 일곱 아이를 사산하고도 매일 토티야를 만드는 삶을 견뎌온 어머니, 너무나 존경하지만 건축현장에서 오랜 세월
일하느라 몸이 망가진 아버지.
호세 데 헤수스는 둘째아들이다보니 좁은 텃밭에 심은 채소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가족을 부양하는 데 힘을 보태야 했다. 어린 형제들은 배를 주린 채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라푸아토 언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클럽 데 골프 산타마가리타에서 본격적으로 캐디 일를 하기 시작했다.

이라푸아토의 집에서 어머니인 호세피나 요예 마르티네즈 아귈라와 함께 한 카마론. 그 옆으로는 개구쟁이 조카가 뛰어가고 있다. (사진_골프닷컴)

호세 데 헤수스의 집에서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불과한 그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거의 맨발로 지내온 그는 골퍼들의 멋진 골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차장에는 근사한 자동차들이 즐비했고, 미국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세 데 헤수스는 가족들의 열악한 환경을 해소시켜주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열다섯 살이 됐을 때 그는 입은 옷 그대로 약간의 돈만 챙긴 채 막연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라푸아토를 떠났다.
그리고 그럴듯한 별명도 있었다. ‘엘 카마론’은 스페인어로 새우라는 뜻인데, 피부는 까무잡잡하지만 햇살에 그을린 뺨이 빨갛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카마론은 1주일간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버스도 타면서 국경 마을인 누에보 라레도까지 약 800km를 이동했다. 낮에는 구걸도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남은 음식을 먹었다.
잠은 다리 밑이나 공원에서 잤다. 누에보 라레도에는 수백달러만 주면 안전하게 국경을 넘겨준다고 약속하는 브로커들이 넘쳐났지만 카마론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 어둠을 틈타 혼자 힘으로 리오그란데를 건널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가 간신히 건너갔는데 국경수비대에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1996년이었고, 붙잡히더라도 버스에 태워 다시 멕시코로 돌려보내던 시절이었다.

낯선 곳에 뚝 떨어진 이방인이 되어버린 카마론은 너무나 외로웠다. 하지만 그때 골프의 신이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궁리하며 공중전화 근처를 배회하던 카마론은 다른 사람이 실수로 놓고 간 물건을 발견했다. 그는 주차장으로 달려갔고, 라틴계 미국인이었던 신사가 트렁크를 열 때 그 안에 멋진 골프클럽이 있는 걸 봤다. 카마론이 클럽에 관심을 보이자 남자는 스페인어로 골프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카마론과 그의 형 로센도는 골프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우연히 만나 카마론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 남자는 페이엇빌에 있는 스톤브리지 메도우스 골프클럽 직원의 조카였다. 남자는 그린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카마론은 정직원이 돼 일을 하게 됐다. 그가 받은 첫 급여는 초과근무 수당을 포함해서 380달러였다. “첫 급여를 받았을 때 엉엉 울었다.” 카마론은 말했다. 그러고는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한 푼도 남김없이 이라푸아토의 어머니에게 송금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로센도와 아버지가 안전한 방법으로 국경을 넘어 아칸소로 올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들은 스톤브리지 메도우에서 함께 일을 하며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카마론은 캐디도 했다. 캐디를 하는 동안 골프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형 로센도와 함께 직접 클럽도 만들었다. 공사장에서 철근을 가져다가 샤프트를 만들고, 구멍 난 자전거 바퀴의 안쪽 튜브는 그립으로 재활용했다. 클럽헤드는 고철을 두드려서 만들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형제는 산타마가리타 주변을 돌아다니며 계곡에 떨어진 볼을 주웠다......

/ BY ALAN SHIPNUCK, PHOTOGRAPHS BY JANET JARMAN

<드라마틱한 유년시절을 보낸 뒤 골프와 인연을 맺고, 어엿한 투어 프로로 미국 무대에 입성하게 된 엘 카마론의 인터뷰 전체 내용은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webmaster@golfk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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