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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말랑말랑 해 지는 골프
갈수록 말랑말랑 해 지는 골프
  •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 승인 2019.02.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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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가이들은 다 어디에 갔나?

갈수록 말랑말랑해 지는 골프...터프 가이들은 다 어디에 갔나?


신사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는 오랜 세월 동안 터프한 개인주의가 득세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골프계에서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이브리드가 나오더니
포옹잔치를 펼치지 않나, 듣기 싫은 소리는 전부 차단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BY ALAN SHIPNUCK

●이런 얘기를 내가 전하게 돼 유감이지만, 골프계는 전반적으로 말랑말랑해지는 추세다. 예를 들자면, 풋조이에서 나온 고급 양말에는 혹시 헛갈릴까 걱정이 됐는지 왼쪽과 오른쪽을 L자와 R자로 표시해뒀다.
그런 증거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롱아이언의 자리를 하이브리드가 차지하고, 스프링클러
꼭지를 맞히는 일이 없도록 레이저가 거리를 측정해주고, 볼은 한참을 날아가는데 9번 아이언으로 빗맞혀도 흠집이 잘 나지 않는다. 자신의 땀마저 묻지 않게 해주는 기능성 옷감도 나왔다.

예전에는 골프장에서 18홀을 끝까지 마치는 게 일반적이었고 골프백도 직접 옮겼다. 그런데 이제는 운영기구들마저 포워드 티와 9홀 플레이를 권장한다.

골프계의 많은 유행들이 그렇듯이 선봉에는 프로들이 있다. 이미 캐디들도 물이 들어서 요즘은 그들도 대회에서 대리 주차를 맡긴다.

세상에! 예전에는 그린을 읽는 게 거의 마술에 가까운 기술이었는데, 지금은 톨스토이의 소설에 필적하는
분량인 데다 읽는 속도도 그와 비슷한 야디지북에 모든 대답이 다 실려 있다. 깔끔한 머리 스타일도 직업적인 필수사항이었지만 요즘은 투어 캐디들도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쓰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런데도 가장 유명한 캐디로 손꼽히는 짐 맥케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더 안락한 TV 진행자로 자리를 옮겼다. 어쩌면 그는 ‘우리’라는 대명사에 진력이 났는지도 모른다. 요즘 투어 선수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팀을 가리켜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모두를 다 아우르는 것처럼 들리지만 골프를 위대한 게임으로 만들었던 거친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예전보다 다정하고 젠틀해진 USGA도 US오픈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들어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던 러프가 단계적인 축소를 거쳐서 이제는 드라이버샷이 빗나가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 수준이 됐다. 월요일의 18홀 연장전은 올드 스쿨과 마초 정신의 마지막 보루였는데, 올해부터는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끔 딸랑 두 홀로 축소됐다.

이기지 못하면 집에 가야 했던 WGC 매치플레이 포맷이 현대에 맞지 않게 너무 약육강식이라고 생각했는지, 매치에서 지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 않을 방식으로 바뀌었다. 얼마 안 있으면 참가 트로피를 나눠주지 않을지 궁금하다.

 

선수들이 이렇게 말랑말랑해졌는데 어째서 색조화장품 회사가 PGA 투어의 공식 스폰서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올해 웰스파고 챔피언십에서는 봅 에스테스가 알레르기를 이유로 기권했다. 나는 에스테스를 좋아하고
그의 고통을 얕잡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레이 플로이드라면 콧물이 흐른다고 기권을 하느니 1번 아이언으로 자신의 코를 내리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벤 호건이라면 반바지 차림으로 연습 라운드를 했을까? 허버트 그린은 1977년에 살해 협박 속에서도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잭 니클로스는 몇 년이나 아널드의 팬 클럽으로부터 뚱뚱보 잭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트위터에서는 위세가 더 대단하다. 빌리 호셸과 이안 폴터는 NBA의 블로킹 왕이었던 패트릭 유잉보다 블록을 더 많이 한다. 왕년의 전사들은 술수의 고수였고 돌 같은 침묵 속에서 플레이를 하곤 했다. 요즘 선수들은 휴가를 같이 가고 귀여운 사진들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닉 팔도는 클라렛 저그를 3개나 가져갔지만 단 한번도 거기에 술을 부어 마시지 않았을 만큼 대회를 존중했다. 리키 파울러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메이저대회의 트로피 중에 술을 부어 마시지 않은 트로피가 없다.

디오픈 챔피언십이 카누스티에서 열리는 올해는 존 필프가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드는데, 그가
진두지휘했던 1999년 디오픈 코스 셋업을 이유로 데이비드 듀발이 “통제 불능의 그린키퍼”라고 평했던
인물이다. 물론 페어웨이가 지나치게 좁고 러프가 지나치게 길기는 했지만 나는 필프의 메시아 같은 시각을 존중하게 됐다. “많은 선수들이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 지금은 은퇴한 필프가 자신의 코스를 옹호하며 1999년에 했던 말이다. “나쁜 바운스만 한 번 나와도 칭얼거린다. 자존심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상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인지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가고 있다. 대체 자신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골프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그 후로 더 격렬해졌다. 그러니 9번 하이브리드를 골프백에 추가하기 전에 부디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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